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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는 중국의 동북공정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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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2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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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는 중국의 동북공정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화

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더욱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측이 고구려 유적지에 고구려 선조가 중원민족에 복속돼있었다는 설명을 붙이거나 광개토대왕을 중국 민족 모습으로 그린 상징물을 설치하는 식이다. 올해는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고구려 유적지 푯돌에 "고구려, 중원민족에 복속됐었다"

3일 조법종 우석대 교수(역사교육)에 따르면, 고구려의 첫 도읍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환인현 오녀산성(졸본성의 당나라 지명)의 고구려유지 박물관 앞에 최근 커다란 산양 조형물이 세워졌다. 그 옆 푯돌에는 "산양은 네 개의 뿔을 달고 있는 고대 북방의 양으로 기원전 1035년 주성왕의 성주대회시 고이가 공헌품으로 중원에 바친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고구려가 중국 고이족의 후손이자 북방민족으로서 주나라 때부터 중원민족에 복속돼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문구다. 조 교수는 "산양은 고구려와는 관계없는 동물"이라며 "고구려를 중국의 한 민족으로 보는 전형적인 동북공정식 설명"이라고 지적했다.








오녀산성(졸본성)의 고구려유지 박물관 앞에 세워진 산양 조형물과 표지석. "산양은 네 개의 뿔을 달고 있는 고대 북방의 양으로 기원전 1035년 주성왕의 성주대회시 고이가 공헌품으로 중원에 바친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 제공

세계문화유산인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지안시 시청과 광장 사이의 태양조(삼족오)상과 여기에 새겨놓은 설명 내용도 문제다. 설명에는 "삼족오(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를 고구려와 중원민족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민족은 중화민족이며, 중화민족의 역사 속에 태양 신앙이 나타나고 있다"고 돼있다. 일방적인 억지 논리다.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지안시 시청 인근 삼족오(태양조)상에는 "삼족오를 고구려와 중원민족이 공유하고 있으므로 고구려민족이 중화민족"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 제공

광개토대왕을 전형적인 중국 무사로 조각

주몽의 탄생 등 고구려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새겨놓은 인근의 열주문에는 광개토대왕을 전형적인 중국의 무사로 조각해 놓았다. 조 교수는 "지안박물관 제1전시실의 이름을 고구려가 중국의 옛 나라라는 의미의 '한당고국'으로 달아 개관 때부터 논란이 됐지만 이것도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中 "동북공정 2007년 중단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2007년 동북공정을 중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인식시키려는 전략이 계속되고 있다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더구나 중국은 2004년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문화관광시설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어 전세계 관광객들에게 중국의 논리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 조 교수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 차례 중국의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해 이런 사실을 기록했다.
http://media.daum.net/culture/religion/newsview?newsid=20140704070108484

고구려 유적, 중국 동북공정에 어떻게 활용됐나

조법종 교수, 고구려발해학회 학술회의서 사례 제시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중국은 2004년 지린(吉林)·랴오닝(遼寧)성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하는 등 이들 유적의 문화자원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는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4일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구려발해학회 주최로 열린 '고구려 유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 고구려 세계유산의 현황과 활용'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동북공정과 관련지을 수 있는 중국 내 고구려 유적 활용 사례를 제시했다.

조 교수는 고구려의 첫 도읍지 홀승골성(紇升骨城)을 중국이 오녀산(五女山)으로 부르는 것부터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이곳은 고구려의 첫 도읍이란 점에서 중국 사서에 나타난 홀승골성이나 졸본성(卒本城), 광개토왕릉 비문에 나타난 홀본(忽本) 등 고구려 첫 수도에 걸맞은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재지인 중국 환런(桓仁)시에서는 고구려 건국과 아무 관계가 없고 실체도 확인되지 않은 당나라 시대 '다섯 여자 전설'을 원용, 오녀산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중국적 역사 전통을 살리려는 의도를 보였다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40704100212779



[단독] 마오쩌둥 '요동은 원래 조선 땅' 발언 확인

이종석 전 장관, 중국쪽 1차 사료 공개


북-중 국경 획정 와중에 여러 번 밝혀


"조선 사람 압록강변까지 내쫓겨"


김일성에 "역사서에 꼭 쓰라" 말하기도


저우언라이도 "중 속국설 터무니 없다"


고구려·발해 중 고대사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근본부터 흔들리는 셈

북한과 중국이 국경 획정 협상을 하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중국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고대 왕조가 조선민족을 압록강변까지 내몰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27일 확인됐다. 이는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주장해온 중국의 국가 차원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연구서 <북한-중국 국경 획정에 관한 연구>(세종연구소 펴냄)에서 마오 주석과 저우 총리가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 이런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마오 주석은 북-중 국경조약 체결 직후인 1964년 10월 베이징을 찾은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을 만나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요동)인데, 봉건주의가 조선 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오 주석의 이런 발언은 1964년 10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11책에 실려 있다.

마오 주석은 이에 앞서 195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립ぜ??"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958년 11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4책에 실려 있다.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의 발언은 좀더 직설적이다. 저우 총리는 1963년 6월28일 베이징을 찾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으며 심지어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저우 총리의 이 발언은 1963년 6월28일 중국 외교부가 펴낸 <외사공작통보>에 실려 있다.

마오 주석이 요동 지방이 애초 고구려·발해 등 조선 선조들의 영토였으나 당 등 중국 봉건왕조의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40228083005901

 

동북 공정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오히려 그걸 왜곡하고 조작해서 자신들의 것인양 하고 있죠.

포털 메인에 있던 기사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검색하지않으면 않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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